두리번거린다
왜 자꾸 두리번거리느냐
뜨거운 불볕더위 속에서도
사무실의 에어컨 바람은 그 얼마나 시원한가
그런데 왜 너는 자꾸 두리번거리느냐
가리봉 오거리 야학 마당에서
만난 스물 두 살짜리
검정고시 여학생,
남동생은 기어코 대학에 보낼 거라며
까칠까칠하게 쳐다보는
퀭한 눈망울
머리칼에서 풍겨나는 고무 냄새,
그 향기가 차마 부끄러워 너 두리번거리느냐
아니면 술 접대에 지친 선배가
종로 국일관 옆 골목으로 너를 불러내어
찔끔찔끔 울던
그날 세운상가의 밤,
아가씨를 알몸으로 껴안고 울었던
헐벗어서 차라리 사치스러웠던
그 까마아득한 밤이 부끄러워 너 두리번거리느냐
아니면 한남동 외인아파트 옆 플라타너스 우거진 골목
다시 말해 별장갈비 옆 골목의 포장마차,
자오록하게 안개 낀 밤 2시
자울자울 졸면서 디스코 음악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는 그 여자의
청순한 영혼을 흔들어보겠다고 너 두리번거리느냐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기 몸을 파는 사람이
경쟁을 위해 순결해야 할 지식을 팔아먹는 너보다
거룩할 수도 있다는 역설이ㅡ
개같이 살아가는 삶이
술집에서만 혁명을 논하는 너보다는
너 끼적거리는 시보다는 위대할 수도 있다는 역설이ㅡ
굴뚝같은 전세방 찌는 더위 속에서 잠들지 못하고
땀을 비질비질 흘리는 것은 고작 너만은 아니다
벽이, 역사가 땀을 흘린다
씨오리와 프락시스, 모순과 변증법 같은 거 따지지 말고
알아도 다시 또 한번 그냥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는 게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정녕 더 낫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