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시노트
조영관 시인의 젊은 시절 시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공간입니다.



작성자 관리자(admin) 시간 2019-01-21 00: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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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거린다

 



왜 자꾸 두리번거리느냐


뜨거운 불볕더위 속에서도


사무실의 에어컨 바람은 그 얼마나 시원한가


그런데 왜 너는 자꾸 두리번거리느냐



가리봉 오거리 야학 마당에서


만난 스물 두 살짜리


검정고시 여학생,


남동생은 기어코 대학에 보낼 거라며


까칠까칠하게 쳐다보는


퀭한 눈망울


머리칼에서 풍겨나는 고무 냄새,


그 향기가 차마 부끄러워 너 두리번거리느냐



아니면 술 접대에 지친 선배가


종로 국일관 옆 골목으로 너를 불러내어


찔끔찔끔 울던


그날 세운상가의 밤,


아가씨를 알몸으로 껴안고 울었던


헐벗어서 차라리 사치스러웠던


그 까마아득한 밤이 부끄러워 너 두리번거리느냐



아니면 한남동 외인아파트 옆 플라타너스 우거진 골목


다시 말해 별장갈비 옆 골목의 포장마차,


자오록하게 안개 낀 밤 2시


자울자울 졸면서 디스코 음악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는 그 여자의


청순한 영혼을 흔들어보겠다고 너 두리번거리느냐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기 몸을 파는 사람이


경쟁을 위해 순결해야 할 지식을 팔아먹는 너보다


거룩할 수도 있다는 역설이ㅡ


개같이 살아가는 삶이


술집에서만 혁명을 논하는 너보다는


너 끼적거리는 시보다는 위대할 수도 있다는 역설이ㅡ



굴뚝같은 전세방 찌는 더위 속에서 잠들지 못하고


땀을 비질비질 흘리는 것은 고작 너만은 아니다


벽이, 역사가 땀을 흘린다


씨오리와 프락시스, 모순과 변증법 같은 거 따지지 말고


알아도 다시 또 한번 그냥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는 게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정녕 더 낫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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