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없이 익는 수박통
봉제공장을 다니다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이태원에서 수박 리어카를 미는
명수라는 친구를 오랜만에 찾아갔었네
흰둥이 껌둥이 물결쳐 흐르는
희뜩희뜩 번뜩번뜩 네온의 거리를
맨송맨송 구경하다가
하, 날도 뜨거운데 푹푹 익어삐는
요놈의 수박 우에할끼고, 라고 불퉁거려 쌓는
명수를 달래가며
순천향병원 입구 포장마차에 앉아 그냥 술을 펐네
독도는 우리 땅, 이태원은 미국 땅 노래를 불러쌓는
옆자리의 학생들이 하도 시끄러워
고롬 고렇지
명수 자식
일단 수박을 쪼개고 갈라서 한바탕 쭈욱 돌린 다음,
잘 나가는 도로또 사분의사박자로
걸쭉하게 뽕짝을 뽑아내는데
오늘도 익는다마는ㅡ사이사이--
정처 없는 수박 통
지나온 자죽마다 뻘건 물이 고여어어따
--살리고 살리고--
이-태원 돌고 도는디 수박이 아아파ㅡ
엇싸라비아 삐약삐약
싸아나이 가슴속에 뿔이 돋는다
띵띵가 다따 띵가띵가 다따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
나아그네 목축일 곳은 여기밖에 없더라
잔 짜자 자짜
서얼 온 지 십 년 돼가도 설움은 처얼리-
드디어는 학생들까지 덩달아
젓가락으로 노래를 흠씬 두들겨 패고
쫓겨난 노랫가락이 전봇대 옆 토사물 위로
주저앉았다 엎어졌다가
드디어는 흐느껴 울고
발을 동동 구르며 퇴근하는
밤 근무 간호원들 날랜 구둣발 소리가
내 머리끝을 또각또각 밟고 지나갈 때가 되면
한잔 더하자는 명수에게도
오늘은 이만하고 가자는 나에게도 벌써 밤은 깊어 버렸네
너도나도 일찍 잠들지 못하는,
부황이 들고 걸신이 들린,
비척거리다가 흐느적대다가 껄껄대다가 소스라치는
정처 없는 이 밤에
가늘게 코를 골며 자는 이쁜 누이야
너의 곤한 잠 위에 군림하는 오빠 오늘도 한없이 미안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