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라 새여
상계동 산동네 올라배기 술집에
니나노 가락이 깊어갈 즈음
너 정숙이는 기어이 그 거리에 나타났다.
교복이 아닌 사복 차림에
광나게 구두를 닦아 신고 좀 어른스럽게 건들대면서
수천 마디 말 중에서 제법 쓸 만한 것들만 골라
내 작심을 하고 갔드랬다.
살며시 뒤를 밟다가 깜짝 놀래키면서
5촉 꼬마전구 불빛처럼
얼굴에 반짝 불 당겨지는 반가움을 보려구
한데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눈빛에
우짠 일로 주둥이가 얼어붙어
겨우 잘 지냈냐고 말문을 트고서는
근처 배 밭으로 잠깐 가자고 조금 우겨댔는데
자꾸만 퉁긴다,
돌단풍이 든 발그레한 얼굴로
쭈뼛쭈뼛 언니네 집 쪽으로 따라가다
나도 모르게 옆구리를 잡아당기며
한 번 더 우겨댔는데 갑자기 내 안면으로
날아드는 배꽃처럼 하얀 손바람.
사랑과 질투란 것이,
자존심과 열등감이
한 집에 사는 것인 줄 그땐 왜 몰랐을까.
살살 달래다 한참 허겁지겁 빌다
결국에는 또 한바탕 을러댔는데
헤싱헤싱 그대로 가버린다.
피곤해, 내일 특근해야 돼. 이 바보 멍충아.
멍청한 것보다 좀더 질긴 것 역시 사랑이라
건들건들 휘파람 불며
사실은 허덕허덕 그 뒤를 쫓아
빤쓰며 부라자며 런닝이 줄래줄래 걸린
길이면서 마당인 골목들을 지나는데
아하,
그 산비탈로부터
왜 그리 마른 바람이 불어오는지
벌써 사방이 그물그물 어두워지고
실눈썹 같이 걸린 달이
부시다 못해 하얗게 타오르는데
이별 뒤에 남은 공포보다 더 큰,
밤안개처럼 어슬렁거리는 안타까운 불안이여
내 모든 것을 던지지 않고서는 넘을 수 없는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강,
그 언덕
이 낯선 헷갈림을 위해 울어라 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