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시노트
조영관 시인의 젊은 시절 시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공간입니다.



작성자 관리자(admin) 시간 2019-01-21 00: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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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공_조영관씨.jpg

울어라 새여




상계동 산동네 올라배기 술집에


니나노 가락이 깊어갈 즈음


너 정숙이는 기어이 그 거리에 나타났다.


교복이 아닌 사복 차림에


광나게 구두를 닦아 신고 좀 어른스럽게 건들대면서


수천 마디 말 중에서 제법 쓸 만한 것들만 골라


내 작심을 하고 갔드랬다.


살며시 뒤를 밟다가 깜짝 놀래키면서 


5촉 꼬마전구 불빛처럼


얼굴에 반짝 불 당겨지는 반가움을 보려구


한데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눈빛에


우짠 일로 주둥이가 얼어붙어


겨우 잘 지냈냐고 말문을 트고서는


근처 배 밭으로 잠깐 가자고 조금 우겨댔는데


자꾸만 퉁긴다,


돌단풍이 든 발그레한 얼굴로  




쭈뼛쭈뼛 언니네 집 쪽으로 따라가다


나도 모르게 옆구리를 잡아당기며


한 번 더 우겨댔는데 갑자기 내 안면으로


날아드는 배꽃처럼 하얀 손바람.


사랑과 질투란 것이,


자존심과 열등감이


한 집에 사는 것인 줄 그땐 왜 몰랐을까.


살살 달래다 한참 허겁지겁 빌다


결국에는 또 한바탕 을러댔는데  


헤싱헤싱 그대로 가버린다.


피곤해, 내일 특근해야 돼. 이 바보 멍충아.




멍청한 것보다 좀더 질긴 것 역시 사랑이라


건들건들 휘파람 불며


사실은 허덕허덕 그 뒤를 쫓아


빤쓰며 부라자며 런닝이 줄래줄래 걸린


길이면서 마당인 골목들을 지나는데 


아하,


그 산비탈로부터 


왜 그리 마른 바람이 불어오는지




벌써 사방이 그물그물 어두워지고


실눈썹 같이 걸린 달이


부시다 못해 하얗게 타오르는데


이별 뒤에 남은 공포보다 더 큰,


밤안개처럼 어슬렁거리는 안타까운 불안이여




내 모든 것을 던지지 않고서는 넘을 수 없는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강,


그 언덕


이 낯선 헷갈림을 위해 울어라 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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