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시노트
조영관 시인의 젊은 시절 시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공간입니다.



작성자 관리자(admin) 시간 2019-01-21 0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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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바다.jpg

그대 정말 달아나느냐

ㅡ 속상해 하는 ㄱ형에게ㅡ

그림 : 남궁산의 판화<동백의 바다>




그대 달아나느냐 이제 딱 부러진 환갑이라고 병아리 같은 아이가


생겼다고 이젠 실속 좀 차려야겠다고 그대 정말 달아나느냐


첫술에 배부르냐던 사금파리처럼 서늘하자던


그 빳빳하던 혓바닥은 정녕 주물러졌는가


조금만 건드려도 터지는 우리는 폭발지뢰라는 그대의 말은


어느 하늘 밑에서 찬비를 맞는가


우리 가슴속에 새겨진 빈곤과 고통, 사랑과 혁명의 백팔번뇌


그건 우리에게 너무 무겁고 힘겨운 것이었지


그대 사각의 벽돌창고에서 가위눌리며 자던 그 차디찬 겨울잠을


아내 곁 그 따뜻하고 간지러운 잠과 어찌 비할 것인가


살아간다는 것은 차가움과 뜨거움의 2차 함수


그 끝없는 회오리라던 그대의 말은 접어놓고라도  


그래 살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


하지만 그 평범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은 그대로인데  


그렇다고 그대 뭐 그리 똑 부러질 것까지 있는가


일보 후퇴가 이보 전진을 도모한다고


그대여 얼굴 돌리며 얘기하지는 말라


한 걸음의 후퇴가 열 걸음의 양보를 가져오고


그게 바로 티없이 맑은 그대 정신에 어떤 마모를 가져올 법한데


그대 정녕 달아나느냐


모든 게 달라졌다고 이젠 분노할 것도 안타까워 할 것도 하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의 타고난 반어법


시간이 흐르면 뜨거웠던 것들도 다 식어가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끝없는 사랑, 그 작은 용기


그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분별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각개전투로 넘어야 할 이 땅과 들판에는


허수아비, 개망나니의 칼춤이 여전히 시퍼렇고,


그대 말대로 보이지 않는 끄나풀이 목을 졸라오고 있는데


속상해 하는 그대여 침을 삼키며 돌아서서 울지는 말라


몇 번이나 허물어지기만 하는 주춧돌 다시 박으며


그래 우리 조용히 허연 죽음을 뿌리는 마음으로 일어서자


사랑이란, 혁명이란 이렇게 사소하고 평범하고 따뜻한 것이거늘


그것으로 삶이 이토록 저리게 아름답지 않은가 속상해 하는 그대


사랑스러운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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