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시노트
조영관 시인의 젊은 시절 시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공간입니다.



작성자 관리자(admin) 시간 2019-01-21 00: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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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_그림_길.jpg

 이중섭 그림 <길>



겨울 산행





겨울 산을 걸어가네


나무들이 발길을 막으며 못 간다고 하네


기어이 숲 틈틈이 숨어 있는


아픔을 보고야 마네


그 옛날 그 누가 쏟아놓고 간


죽음도 보고야 마네



기어이 살랑대던 가슴도


드디어 풀밭 위에 드러누워 앓고


대바늘만한 어린 소나무


바위틈에 꽂혀서 떠는 그 아늑한 평화에


그만 귀가 뜨거워져


발길만 앙상하게 살아 돌아오네


낙엽을 덮고 누운


비 갠 산에는


어느 곳이 가장 아픈 것인지 잘은 몰라도


덜 아플 듯한 곳만 골라 딛고 돌아오네


그 누가 불러 앉힐까


귀도 오그린 채 돌아오네



저어기 머언 산모퉁이에서는


등을 다친 바람이


흔들어볼 만한 나무는 다 흔들어 보고 오는데


뚝 뚝 발걸음만 살아 돌아오며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더 깊숙이 부딪치고 싶어지는


저 바람 근방에서


벌건 해를 품에 보듬어 안아 식히는


저 촉촉한 하늘 근방에서


흔들리는 아픔, 온통 살아 넘치는 시간도


기어이 보고야 마네



감격해 가며 살려고


느껴가며 살려고


며칠 동안 그 이야기만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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