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그림 <길>
겨울 산행
겨울 산을 걸어가네
나무들이 발길을 막으며 못 간다고 하네
기어이 숲 틈틈이 숨어 있는
아픔을 보고야 마네
그 옛날 그 누가 쏟아놓고 간
죽음도 보고야 마네
기어이 살랑대던 가슴도
드디어 풀밭 위에 드러누워 앓고
대바늘만한 어린 소나무
바위틈에 꽂혀서 떠는 그 아늑한 평화에
그만 귀가 뜨거워져
발길만 앙상하게 살아 돌아오네
낙엽을 덮고 누운
비 갠 산에는
어느 곳이 가장 아픈 것인지 잘은 몰라도
덜 아플 듯한 곳만 골라 딛고 돌아오네
그 누가 불러 앉힐까
귀도 오그린 채 돌아오네
저어기 머언 산모퉁이에서는
등을 다친 바람이
흔들어볼 만한 나무는 다 흔들어 보고 오는데
뚝 뚝 발걸음만 살아 돌아오며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더 깊숙이 부딪치고 싶어지는
저 바람 근방에서
벌건 해를 품에 보듬어 안아 식히는
저 촉촉한 하늘 근방에서
흔들리는 아픔, 온통 살아 넘치는 시간도
기어이 보고야 마네
감격해 가며 살려고
느껴가며 살려고
며칠 동안 그 이야기만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