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쉼터
이곳은 시인과 함께 했던 많은 일들과 아쉬움, 그리움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희망을 싣는 곳입니다.



작성자 조영선 시간 2019-01-29 14:34:20 조회수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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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불온한 꿈을 위한 序詩

 

 

삶이란 깨진 유리를 밟는 것처럼 아슬한 것이거늘

하루의 허기진 노동을 끝내고

촉촉하게 젖은 얼굴로 뒤돌아보는 어깨 위로

지그시 새 날개처럼 덮어오는 들녘의 어둠

조영관의 < 산재비 > 중에서

 

이름 없는 시인, 노동자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모두들 떠나간 자리에, 아래로 더 아래로 가라앉아 결국 스스로 숯이 되었다. 지식인의 왜소함과 나약함을 떨치듯 그는 처절히 노동자로서, 노동자의 삶을 살다 갔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불온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하루하루의 허기진 노동 끝에 ‘새 날개처럼 덮어오는 들녘의 어둠’ 같은 포근한 저녁을 꿈꾸었다.

 

시인에게 삶은 ‘깨진 유리를 밟는 것처럼 아슬’한 것이었다. 회의의 시대, 1990년대를 넘어서서도 노동과 시의 최전선에서 끝까지 자기 생을 걸고, 결국 이루지 못한 꿈을 간직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다. 시밖에 달리 할 일이 없는 그는 대책 없는 시인으로, 노동자로 살다갔다.

 

그가 홀연히 떠난 지 10년

 

혼자서 견디기 힘든 역사의 격랑에, 벌건 가마 불구덩이에 스스로를 던지듯 이름 없이 스러져갔다. 한 여름 소낙비처럼 이름 없이 스러져가는 사람들. 야만과 폭력의 시대, 인간과 노동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살다간 사람들. 절망과 회의의 시대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속에 조영관 또한 서 있었다.

 

추모행사를 하고, 문학창작기금을 전달하고, 문학전집을 내는 것은 조영관 한 사람을 기리자는 것보다, 조영관처럼 살다간 이름 없는 들꽃 같은 사람들의 험난했던 삶과 그들이 품었던 불온한 꿈을 가슴에 새기자는 것이고, 아직도 어두운 밤거리를 고양이처럼 두리번거리며 새벽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국밥 한 그릇 내밀며 철철 넘치는 막걸리 한잔 나누고자 함이다. 저 시커먼 공장에도, 시청 앞 광장에도, 광화문 캠핑 촌에도 아직도 부르튼 손으로 불온한 꿈을 꾸는 수많은 조영관이 있지 않은가.

 

조영관이 다시 돌아왔다

 

그의 서툰 넋두리를 전집으로 모았다. 그의 넋두리에는 한 밤중 홀로 포효하는 부르짖음도 있었고,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의 허허로움과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하는 숨찬 노동에 대한 회한과 안쓰러움도 있었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거친 미숙함이 더 많았고, 찬란한 기쁨보다는 한없이 스스로를 갉아대는 성찰과 자책이 더 많았다. 모두가 서툰 우리의 모습이고 조영관의 득도하지 못한 평범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을 빛내며 기어코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은 피워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린‘붉은 꽃’같은 한 사람의 인생을 한번쯤 되새기자는 것이고, 한 사람의 작은 역사 속에서나마 조금씩 식어가는 우리들의 열정을 되돌아보고 불온한 꿈을 위해 작은 다짐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아닐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전집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더운 날 추운 날의 노고가 있었다. 어수선하기만 한 유고시, 소설, 평론들을 정리하고 전집 전체를 기획한 박일환, 송경동, 문동만시인과 제6회 문학창작기금 수혜자이기도 한 하명희 소설가, 그리고 필요한 지원을 마다하지 않은 ‘노동자 시인 조영관 추모사업회’ 장달수 대표, 서울시립대 민주동문회 최석희, 정진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들의 땀과 지혜가 있었다. 감사드린다. 또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출판을 기꺼이 맡아준 도서출판 <삶창> 황규관 대표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한 사람을 보내고, 수백 사람, 수천 사람의 조영관을 맞이하였다. 그동안 외롭지 않게 관이형과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50도 안된 짧은 인생을 살다간 형이‘장산곶 마루에 ∼ ’ 하면서 덩실 덩실 어깨춤을 추며 나타날 것만 같다.

 

우리 모두가 조영관이다.

그래서 기쁜 날이다 .

 

2017.2.25


시인 조영관의

아우 조영선

 

등록일 : 2017.03.14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생각하고, 힘든 노동자의 삶을 살다간 조영관 시인의 뜨거운 가슴에 꽃 한 송이 올립니다.
또한 그분의 숭고한 뜻을 계속 이어가시는 아우 조영선 선생님과 운영위원님 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2021-02-01 14:03:29   변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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